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인간 사고의 근본을 탐구하고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던지는 힘을 지닌 지적 유산입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는 이 점에 주목하여 인문학 교육의 정수를 담은 ‘고전 100권(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커리큘럼을 통해 학생들에게 진정한 학문의 본질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 커리큘럼은 단순한 독서 목록을 넘어,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현대 사상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을 형성한 위대한 사상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 줍니다. 본 글에서는 시카고대의 고전 100권 프로그램이 탄생한 배경과 그 구성 방식, 교육 철학, 그리고 국내외 교육자들에게 던지는 시사점까지 폭넓게 살펴보겠습니다.
1. ‘고전 100권’의 탄생 배경과 교육적 철학
시카고대학교의 ‘고전 100권’ 커리큘럼은 1940년대 초 당시 총장이었던 로버트 허치스(Robert M. Hutchins)와 교수 모티머 애들러(Mortimer J. Adler)에 의해 구상되었습니다. 이들은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쳐서는 안 되며, 학생이 스스로 사고하는 훈련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서양 고전 중심의 통합 교양교육 과정을 정립하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100여 권에 이르는 인문·사회·자연과학 서적을 선정하여 모든 학생이 함께 읽고 토론하는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지속적인 질문’과 ‘대화’를 통해 진리에 접근하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닌 사유의 구조와 논리, 철학적 깊이를 체득할 수 있게 됩니다. 단순히 교양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닌, 삶을 통찰하는 도구로서 고전을 대하는 자세가 이 커리큘럼의 핵심입니다.
2. ‘고전 100권’의 도서 구성과 범위
시카고대 커리큘럼에 포함된 ‘고전 100권’은 단일 목록이 아닌, 분야별로 엄선된 다양한 고전 텍스트를 포괄합니다. 이에는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홉스의 『리바이어던』, 로크의 『정부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다윈의 『종의 기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서양 사상사를 대표하는 저작이 포함됩니다. 문학, 철학, 정치학, 경제학, 과학 등 각 분야에서 인간의 존재와 사회, 자연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히 원전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텍스트의 맥락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오늘날 그것이 갖는 함의를 함께 고찰합니다. 시카고대는 이 과정에서 ‘절대적인 정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학생이 각자의 사유를 바탕으로 텍스트와 대화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3. 강의 방식: 소크라테스식 문답과 토론 중심의 수업
‘고전 100권’ 커리큘럼의 핵심은 수업 방식에 있습니다. 시카고대는 이 과정을 단순히 교수자의 강의로 채우지 않고, 학생들이 함께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Socratic Method)을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합니다. 수업은 보통 15명 이내의 소규모 세미나 형태로 운영되며, 교수는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고, 학생은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말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지식 암기에서 벗어나, 비판적 사고력과 분석적 표현력, 협업적 소통 능력을 배양하게 해 줍니다. 또한, 서로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동료들과의 대화는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러한 수업은 학생에게 단지 고전을 읽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텍스트를 살아있는 사유의 장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집니다.
4. 현대 교육에 주는 시사점과 국내 적용 가능성
시카고대의 ‘고전 100권’ 프로그램은 단순히 서양 중심의 인문학 커리큘럼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이는 교육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실천의 산물이자, 인간 중심의 사고와 질문 중심 학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한국 교육에서 주입식 암기 위주의 교육 방식에 대한 비판과 변화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러한 토론 기반의 고전 읽기 프로그램은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고려대학교 고전100권 프로그램 등 일부 대학에서 유사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으며, 고등학교 자유학기제나 융합형 수업에서도 고전을 활용한 수업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육이 단지 미래 직업을 위한 준비가 아닌, 삶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임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디스크립션 (요약문)
시카고대학교의 ‘고전 100권’ 커리큘럼은 인문학 교육의 모범 사례로, 단순한 독서 목록이 아닌 깊이 있는 사고 훈련의 장을 제공합니다. 총장 로버트 허치스와 모티머 애들러가 고안한 이 프로그램은 서양 고전 텍스트를 중심으로 철학, 정치, 과학, 문학을 아우르며,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통해 학생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게 합니다. 특히 강의 중심이 아닌 토론 중심 수업을 운영하며, 비판적 사고력과 자기 성찰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 과정은 한국 교육에도 시사점을 던지며, 이미 일부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유사한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습니다. 고전을 읽는 것은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성찰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지적인 여정입니다. 교육이 진정한 의미를 되찾기 위해, 우리는 ‘고전 100권’과 같은 깊이 있는 커리큘럼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